[파워CEO]권영범 영림원 소프트 랩 사장


"[파워CEO]권영범 영림원 소프트 랩 사장"

*사장(社長)보다 원장(院長)이 더 친숙


 권영범 원장(55). 영림원 소프트 랩 대표이사 사장이다. 창업 한지 15년이 지났지만 사원들은 아직도 그를 원장으로 부른다. 자신도 사장보다 원장으로 불리우길 원한다. 직함으로는 이익을 추구하는 주식회사가 아니라 사회공헌을 하는 법인처럼 느껴진다. 왜 그러냐고 물어보니 대답은 의외다. “사장보다 원장이 더 익숙해서” 란다.


 어엿한 주식회사지만 ‘영림원’이라는 사명 때문인지 직원들이 처음부터 그를 “원장님, 원장님”하고 불렀단다. 굳이 사장으로 부르라 하고 싶지도 않았단다. 세 살 때 버릇 여든까지 간다고 직원들은 지난 15년간 원장님을 사장님으로 고쳐 부르지 않았다. 말로는 어쩌다 그렇게 됐다고 했지만 그리 들리지만은 않는다. 사장 대신 원장을 고수하는 다른 이유가 있으리라. 권 원장은 첫인상부터 사장이 아닌 말 그대로 원장같다. 산전수전 다 겪었을 이력이지만 여전히 마음씨 고운 학자같은 풍모다. 느릿느릿한 말투도 천상 학자타입이다.


유치장을 나오자마자 그는 ROTC를 자원했다. 죄의식을 떨쳐버리고 열심히 노력하며 살아야겠다는 각오를 실천으로 옮기기 위해서였다. “제가 얼마나 놀았나 하면, 친구들조차 내가 ROTC 생도가 된 걸 도저히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이더군요.”


 ‘최소의 노력으로 최대의 효과를’ 추구하던 철없던 한 젊은이는 이로부터 20년 후 정 반대의 삶을 살게 된다. 자신만을 위해 살았던 삶에서 남을 위해 살아가는 삶으로 뒤바뀌었다. 고객이 경영을 더 잘하게 돕고, 고객에게 최상의 솔루션과 감동 서비스를 제공하며, 고객의 성공을 자신의 성공 잣대로 삼는 영림원 원장으로서다.


◆영재들이 모인 곳


 영림원(英林院, 지금은 永林院으로 바뀌었다)이라는 이름은 창업 전에 작명해두었다고 한다. 창업을 염두에 둔 것이 아니었다. ‘영재들이 모여있는 곳’이라는 의미가 너무 마음에 들어서였다 한다. 지난 93년 창업을 결심하고 사명을 고심하던 끝에 불현듯 영림원이란 이름이 다시 떠올라 옳다구나 채택하게 됐다고 한다. 소프트 랩이 뒤에 붙는 이유가 재밌다. 상호를 등록하러 가보니 같은 업종에 이미 영림원으로 등록한 곳이 있더라는 것이다. 그래도 영림원을 포기하지 못해 뒤에 소프트를 붙였단다. 소프트를 붙이고 나니 연구개발의 의미를 살리고 싶어 다시 랩을 덧붙였단다. 인재 양성과 치열한 연구개발, 이것이 그가 회사명을 영림원이라 칭하고 또 원장을 고집하는 숨은 뜻이다. 모두가 끊임없이 경영지식과 IT지식을 쌓고, 아시아 시장을 선도하며, 나아가 세계로 도약한다는 게 그의 경영철학이다.


영림원은 지난 15년간 450여개 국내 중소기업들을 ERP 고객으로 확보했다. 업종으로 따져도 20여종에 이른다. 권 원장은 머지않아 1000개 고객사 확보를 자신한다. 중소기업용 ERP에서 만큼은 경쟁력을 자신하기 때문이다. 오라클과 SAP이 호시탐탐 노리고 있지만 이들의 제품은 중소기업에겐 너무 덩치가 크고 무겁다. 중소기업, 그것도 국내 환경에 특화된 제품으로 지난 15년간 쌓아온 기술력과 경험이 영림원의 가장 큰 자랑이자 무기다.


 어느 듯 이순(耳順)을 바라보는 권 원장이 경영자로서 지닌 마지막 목표는 분명하고 단호하다. 영림원이 아시아 1위 ERP 기업으로 우뚝 서는 것이다. 그래서 영림원(英林院)을 다시 영림원(永林院)으로 바꾸었다. CI까지 다시 했다. 영재들이 숲을 이루는 것만으로는 성에 차지 않아서다. ‘영재들의 전당이여 영원하라’는 뜻에서다.


 “ERP의 특성상 고객 사이트가 1000개만 넘어서면 영속할 수 있습니다. 사후 서비스로만 일정한도 이상의 매출을 꾸준히 올릴 수 있습니다. 여기다 다양한 고객으로부터 얻는 유익한 정보, 실증 경험으로 축적한 노하우까지 더해져 수준급 개발력을 확보하는 선순환 구조가 됩니다.”


◆ERP외엔 보고도 말라


 ROTC 장교 근무를 마친 권 원장은 삼성전자, 한국과학기술원(KIST) 시스템공학센터, 큐닉스데이타시스템, 영림원 창업에 이르기까지 파란만장한 SW엔지니어 인생을 살아가게 된다. 전자공학을 전공했지만 SW를 하고 싶어서 선택한 길이다. 좋아서 선택할 길인만큼 최초의 연속이었다. 시스템공학센터 시절 연간 최고 1200% 인센티브와 특진의 연속이었다. 성기수 박사(당시 센터장)가 83년 운명을 걸고 추진했던 제64회 인천 전국체전 전산화 실무책임자를 맡았다. 이후에는 86 아시안게임과 88 올림픽 전산 시스템 설계까지 도맡았다. 6년간 근무실적이 다른 동료들 12년간 성과와 맞먹었을 정도다.


 큐닉스데이터시스템 SW사업부장으로 자리를 옮긴 뒤에도 최초 기록은 이어졌다. 91년 대한페인트잉크, 93년 동양화학 등에 IBM메인프레임을 최초로 다운 사이징하는 프로젝트를 감행했다. 연속된 전산 프로젝트로 몸과 마음이 파김치가 되어 버렸다. 말 그대로 생명을 구하기 위해 국선도를 찾았다. 국선도로 심신의 생기를 다시 찾은 권 원장은 패키지SW라는 새로운 길을 찾아 나섰다. 전산 SW개발이라는 게 끝이 없어 보였기 때문이다. 당시 패키지 SW는 OS정도밖에 없었을 시절이었다. 큐닉스 시절 개인적인 관심으로 개발시킨 ‘평생비서 오!K"를 들고 나와 영림원을 차렸다. 당시 아래아 한글도 있었지만 상업용 패키지SW로는 효시나 다름없었던 제품이다. 복제가 극성을 부리던 당시 환경에서 패키지SW 사업이 잘 될 리는 만무했다. 그래서 찾은 길이 ERP였다. 국내 최초의 ERP 패키지 K시스템은 이렇게 탄생됐다.


 “처음에는 고객들의 다양한 요구에 일일이 맞춰주는 커스터마이징도 많이 했습니다. 유명 외산과 비교해 명성이 하늘과 땅 차이인 국산 ERP가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전산 프로그래밍처럼 일도 많아지고 인력도 늘게 되었습니다. 이래선 안되겠다 싶어 결국 커스터마이징과의 결별을 선언했습니다.”




패키지SW사업에는 유혹이 많이 따른다. 그중 으뜸이 커스트마이징과 매출 늘리기다. SW에 하드웨어만 갖다 붙이면 매출은 금방 늘릴 수 있다. 하지만 이러다 보면 주종이 바꾸기 십상이다. 국내 SW산업이 제대로 성장하지 못하는 아킬레스 건이다.


 권 원장은 ERP 실적 외에는 보고도 하지 말라고 직원들에게 주문한다. 패키지SW에서 승부를 걸겠다는 각오에서다. 느리지만 황소 걸음을 걷겠다는 게 신념이다.

◆교육, 천하지대계


 권 원장은 업계에서 국선도 전도사로 통한다. 학자풍의 풍모도 기실 오랜 국선도 수련의 결과다. 지난 93년 큐닉스시절 잇단 다운사이징 프로젝트로 파김치가 된 심신을 되살릴 수 있었던 이후부터다. 국선도는 창업과 패키지SW 사업이라는 새 삶을 살게 해준 구세주나 다름없다. 심신 수련 교육이 천하의 으뜸이라는 평생 철학도 여기서 비롯됐다.


 “입시위주의 우리 교육은 정말 문제가 심각합니다. 올바른 심신수양이 되는 새로운 교육시스템이 필요합니다.”


직원들 모두에게는 태극권을 수련시키고 있다. 태극권 수련 도장까지 마련했다. 심신이 바르지 못하면 올바른 인재가 되지 못한다. 고객들에게도 최선을 다할 수 없다.


 무한 경쟁시대에 경영 최일선을 컨설팅 해야하는 게 ERP 사업이다. 최신 경영기법과 정보를 놓쳐서는 안된다. 영림원은 물론 고객들까지 피해를 입게 된다. 그 스스로도 2003년 늦깎이로 뉴욕 주립 대학원에서 기술경영 석사를 마쳤다. 지난 81년 삼성전자를 그만두고 떠나려던 유학을 22년만에 성취했다. 2006년에는 미국 USC MBA 석사까지 졸업했다. 매년 직원들을 선발해 MBA를 보낸다. 영림원이 말 그대로 영재들의 영원한 전당이 되도록 하기 위해서다.


 교육에 대한 열정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처음 20년간은 자신만을 위해 살아왔다. 또 20년간은 직장을 위해 열심히 뛰었다. 그리고 지금껏 20년 가까이는 ERP와 영림원을 위해 살아왔다. 또 하나의 영림원을 가꾸는 게 또 다른 20년간의 꿈이다.

“영림원이 영원의 변곡점에 접어드는 순간까지만 이 자리를 지키렵니다. 이후엔 또 다른 곳, 더 넓은 곳에서 대한민국의 영재를 양성하는 게 저의 마지막 소망입니다.”

■권영범 사장은


1954년 서울 출생으로 서울 경기고, 서강대 전자공학과를 졸업했다. ROTC 장교 제대후 곧바로 삼성전자 컴퓨터사업부에 입사했다. 과학기술원 시스템공학센터, ㈜큐닉스데이타시스템를 거치면서 전국체전 전산화, 메인프레임 다운사이징 등 프로그램 개발을 담당했다. 영림원 소프트 랩을 창업하고 국내 최초 ERP인 K시스템으로 ERP사업에 전념해오고 있다. 뉴욕 주립대학원 기술경영 석사, 미국 USC MBA 석사를 졸업하고 ‘CEO를 위한 신경영학’을 발간했다. 국선도와 음악감상에 조예가 깊으며 부인과 아들 둘과 함께 단란한 가정을 꾸리고 있다.


-2008.2.25 전자신문, 유성호 부국장<<<


by 미니깡 | 2008/02/28 08:27 | 디지털트렌드 | 트랙백 | 덧글(0)
GE 130년 성공의 비밀

GE는 10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지속적으로 최고의 성과를 창출했고, 경영혁신이나 경영관리시스템에 있어서도 가장 앞서 나가고 있기 때문에 많은 한국기업들이 GE를 배우려 하고 있다. 그러나 GE의 경영에 대해 완전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역사적 관점에서 GE를 살펴 보아야 한다. GE의 경영방식은 그들이 속한 환경에 적응해 나가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역사적 산물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설립부터 현재까지 GE의 경영을 크게 세 시기로 나누어 살펴보았다. 첫 단계인 개발의 시기에 GE는 전기기술을 기반으로 혁신적인 제품을 개발하는 데 주력했으며, 2차 대전 이후 사업의 시기에는 다각화와 함께 분권화된 조직구조를 갖추고 전사적인 임직원 교육에 매진했다. 1970년대부터 분류되는 경영의 시기에는 선택과 집중을 통해 사업 포트폴리오를 강화하고 이를 수행할 수 있는 경영시스템을 구축하였다. 장기간에 걸친 GE의 성장과정에서 일등주의는 꾸준히 발견된다. GE 경영진과 구성원들은 일등 마인드로 끊임없는 혁신을 지속하고, 최고 인재에게 투자하며, 역량 축적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GE를 벤치마킹하는 데 있어 한국기업은 일등 마인드의 중요성을 깨달아야 하고, 현재 기업이 어떠한 성장 단계에 속해 있는지 파악해야 할 것이다.

 

< 목 차 >


Ⅰ. 문제 제기
Ⅱ. GE의 성장과 발전
Ⅲ. GE 경영의 DNA
Ⅳ. 시사점

 

 

I. 문제 제기


기업의 세계는 순위가 지배한다. 최근 들어 이러한 현상은 더욱 심해졌다. 시장이 글로벌화되고 디지털 경제가 도래하면서 승자 독식(Winner takes all)의 세상으로 변해가고 있다. 이제 한 산업에서 3위를 해서도 먹고 살기 힘들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그래서 기업 생태계만큼 리더(Leader)의 가치와 위상이 굳건한 곳도 없다. 학생들이 공부 잘하는 아이의 학습 방법이나 심지어 생활 방식까지 본 받으려 애쓰는 것처럼, 기업들도 1등 기업을 따라 한다. 과거에는 선도기업의 제품과 기술을 모방했지만, 요즘은 그들의 경영방식까지 배우려고 한다.


이 같은 상황에서 GE는 벤치마킹의 으뜸 기업이다. 90년대 후반부터 GE의 경영과 성공의 비밀을 담은 수많은 서적과 논문이 쏟아져 나왔다. 이질적인 사업 포트폴리오를 효과적으로 경영해 나가고 있는 GE는 다양한 산업을 소유하고 있는 한국 대기업들에게는 그야말로 경영교과서였다.


이처럼 GE가 벤치마킹의 대상이 된 것은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우선 기업이 설립된 후 100년이 넘게 탁월한 성과를 지속시켜 왔다는 점이다. GE는 <월 스트리트 저널>을 창간한 찰스 다우(Charles Henry Dow)가 최초로 다우존스 산업평균지수(Dow Jones Industrial Average)를 만들기 위해 선정했던 성과가 높고 영향력이 큰 산업 내 대표기업들 12개 중 11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 유일하게 지표 내에 존재해 있는 기업이다. 장수기업의 성과를 연구한 포스터와 캐플란의 저서 <창조적 파괴>를 보면 GE는 지난 20세기 동안 시장 수익률을 상회한 유일한 기업인 것을 알 수 있다(<그림 1> 참조). 연구 시점 당시 코닥도 시장 수익률을 넘어섰지만 제품 디지털화에 대응하지 못해 지금은 성과가 하락했고 2004년 다우지수에서도 제외되었다.


GE가 배움의 대상이 된 두 번째 이유는 경영혁신에 있어 모범이 되기 때문이다. 더욱이 2006년 매출 1,600억 달러가 넘는 거대기업임에도 끊임없는 혁신으로 몸집을 가볍게 하고 빠르게 움직인다. 공룡이 도마뱀만큼 빠르게 움직이는 것이므로 기업 규모가 커지면서 의사결정이 둔화되는 것을 경험한 대기업들은 GE가 부러울 만도 하다. GE는 웰치의 주도 아래 대기업의 병폐인 관료주의를 없애고 벽없는 조직을 만들기 위해 워크아웃(Work-out)이나 6시그마 등 다양한 경영혁신 기법을 성공적으로 실행했다.


이러한 GE의 경영혁신 기법과 경영시스템은 GE가 성장과 발전을 거듭해온 가운데 생성된 결과물이다. 모범답안이나 심지어 만병통치약으로 여겨지는 GE의 경영방식은 GE가 위치한 시대적, 사회적 환경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이러한 컨텍스트를 읽지 않고 GE를 모방하는 것은 오히려 해가 될 수도 있다. 특히 문화적 토대가 다른 한국기업으로서는 GE를 배우는 데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다. 사실 GE에 대한 연구가 수없이 나왔지만 대부분은 웰치의 경영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오직 GE의 현재만을 다루고 있는 것이다. GE가 130여년간 성공을 지속해 올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GE의 발전과정에서 GE가 성공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살펴 보자.

 


II. GE의 성장과 발전

 


기업도 생명체와 비슷하게 유년기, 성장기를 거쳐 성숙하고 쇠퇴한다. 각 단계별로 사업과 경영의 성공 포인트가 달라진다. 1876년 설립되어 130년 이상을 성장해온 GE도 마찬가지다. GE의 경영 역사는 영위하는 사업과 경영시스템의 특징에 따라 크게 3개의 시기로 나눌 수 있다. ‘개발의 시기’를 시작으로 ‘사업의 시기’를 거쳐 ‘경영의 시기’로 변화되어 왔다.


각 시기의 경영 방향이나 특징은 당시의 시대 환경과 시장 여건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레 만들어진 것이다. 또한 한 시기의 경영 방식과 제도 등은 경영 환경이 달라진 다음 시기에도 계속해서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하에서는 시기별로 GE의 사업과 경영에 대해서 살펴보고 그 주요 특징을 규명해 보고자 한다.


1. 개발의 시기


에디슨이 GE를 설립했고, 많은 사람들이 그를 GE의 아버지쯤으로 생각하고 있지만, GE의 역사에서 에디슨이 끼친 영향은 크지 않다. 회사의 이름을 GE로 쓰고 있지만 1892년 톰슨 휴스톤(Thomson Houston)과 합병할 때 에디슨 GE(Edison General Electric)는 소수 파트너로서 흡수되었다고 보는 편이 옳다. 따라서 GE의 경영을 구분하는 첫 번째 단계인 개발의 시기 역시 1892년부터 1939년까지로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이 시기는 세 사람의 CEO에 의해 운영되었다. 합병된 GE의 초대 CEO인 찰스 코핀(Charles A. Coffin, President, 1892~1913), 그 뒤를 이은 에드윈 라이스(Edwin Rice Jr., President, 1913~1922)와 제라드 스워프(Gerard Swope, President, 1922~1939, 1942~1944) 등이 그들이다.


① 기술 기반의 혁신적인 제품 개발


20세기 초반은 각종 전기기술이 발명되고 이 기술이 상업화되어 전기산업이 태동했다. 당시 신발 사업을 하고 있던 코핀은 전기산업의 유망한 기회를 보고 톰슨과 휴스톤이 설립한 미국전기회사(American Electrical Company)를 매입하여 전기사업을 시작했다. 사명을 설립자들의 이름을 따 톰슨 휴스톤으로 바꾼 후 에디슨의 GE와 합병하여 지금의 GE를 출범시키고 초대 CEO로 취임했다. 당시 전기산업은 태동기라서 탁월한 기술로 품질 좋은 제품을 만들 수 있는 기업이 많지 않았다. 이에 코핀은 혁신적인 제품을 지속적으로 개발하고 회사의 특허권을 보호하고 넓히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다. 당시로는 최고 수준의 R&D 센터를 설립하고 최고의 과학자와 엔지니어들을 채용하였다.


또한 이러한 연구개발 활동의 결과로 만들어진 특허를 보호하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이를 위해 연방정부의 허가를 받아 당시 경쟁사인 웨스팅하우스(Westinghouse)와 특허관리위원회(Board of Patent Control)를 발족하였다. 이 위원회는 한 발명가가 특허를 내면 그것이 GE나 웨스팅하우스의 특허를 침해하지는 않는지 검토하고 법적 대응을 했다. 또 두 회사의 특허를 침해하지 않는 경우에는 해당 특허를 획득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했다.


그러나 이 시기는 경제 수준이 높지 않아서 고객들은 GE의 첨단 고가 제품을 살 수 있는 여력이 별로 없었다. 특히 GE의 주력 제품인 발전설비의 경우 소규모의 전력회사가 구매하기에는 상당히 벅찬 가격이었다. 그래서 GE는 전기채권투자회사(Electric Bond and Share Company, EBASCO)를 만들어 소규모 전력회사에 대해 투자하거나 자금을 빌려주어 시장을 키웠다. 이후 고객의 지분을 소유하여 그들의 제품 구매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 비윤리적이라고 판단한 3대 CEO 스워프는 전기채권투자회사를 해체한다. 그러나 아이디어는 살려 소매업자를 위한 금융서비스와 소비자에 대한 대출 서비스를 시작하기 위해 GECC(General Electric Credit Company)를 설립했다. 이러한 활동이 지금은 GE의 가장 커다란 사업부문인 금융서비스 사업의 모태가 된 것이다.


② 인재 양성에 많은 노력


전기기술 기반의 관련 제품을 만드는 GE의 조직은 매우 단순했다. 생산, 재정, 회계, 영업, 법무, 비서팀 등 CEO 산하에 6개 부서가 속해있는 구조였다. 코핀부터 스워프까지 제품은 늘어나고 조직의 크기는 커졌지만 CEO가 모든 사업을 관장하는 중앙집중적인 조직을 유지했다. 조직 관리보다 많은 힘을 들인 것은 사업에 필요한 인재를 구하는 일이었다. 코핀은 엔지니어가 아니었으나, 회사의 방향은 철저히 엔지니어가 중심이 되어 기술을 기반으로 선도적 제품을 판매하는 전략을 선택했다. 그러다 보니 항상 최고의 발명가나 엔지니어를 채용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이 시기 GE의 R&D 센터를 이끌며 교류 전류의 메커니즘을 밝히는 등 수많은 기술을 개발해 낸 슈타인메츠(Charles Steinmetz)의 영입 과정을 보면 GE가 얼마나 핵심인재를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알 수 있다. 슈타인메츠는 독일에서 이주한 후 에크메이어(Rudolf Eickemeyer)의 회사에서 연구자로 지내던 중 GE로부터 스카우트 제의를 받았다. 슈타인메츠가 이직할 필요를 느끼지 못해 거절하자, 코핀은 에크메이어의 회사를 통째로 인수하여 그로 하여금 R&D 센터를 이끌게 했다.


물론 경영분야에서도 능력 있는 대졸 인재를 확보할 필요성을 인식하고 비즈니스 연수 프로그램을 개설하는 등 인재 양성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또 대공황 당시에는 파업이 자주 일어났는데, GE에서는 파업이 자주 발생하지 않았다. 엔지니어뿐만 아니라 공장 근로자들도 기술 교육을 통해 역량을 향상시켰고 해고도 하지 않았다. 지금도 GE는 신입사원을 훈련시키는 프로그램을 개설하여 인재를 양성한다. GE의 인재 중시 철학은 하루 아침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③ 한발 앞선 준비와 실행


이 시기 GE의 경영을 간단히 요약하면 일등 마인드를 가지고 모든 비즈니스에서 남들보다 한발 앞서 실천했다는 것이다. 최고의 제품을 만들기 위해서는 최고의 엔지니어가 필요하다고 판단하고 남보다 앞서 인재 확보에 주력했다. 산업 전체적으로 제품 성능이 소비자들의 기대수준에 미치지 못하던 시기였기 때문에 제품 성능 향상을 위해 공장 근로자들에 대한 교육에도 남다른 신경을 썼다.


또 GE는 사업을 하는 데 있어 한계를 두지 않고 경쟁자보다 먼저 혁신적이고 기존 질서를 파괴하는 방법을 활용했다. 가령 정부에 영향력을 행사하여 자사의 기술을 표준화시키기도 했다. 또 고객들이 GE의 첨단 제품을 사용할 줄 모르고 구매 여력도 부족하여 시장 규모가 생각보다 커지지 않는다고 판단하여 고객들에게 재정지원과 기술지원을 하여 시장의 크기를 확대시켰다. 이러한 GE의 사업 방식이 훗날 솔루션 사업을 하는 밑거름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2. 사업의 시기


2차 세계대전 동안 군수품을 제조하면서 GE는 전기기반 기술을 핵심역량으로 하여 점차 인접 산업으로 진출한다. 그 결과 1950년대에는 매우 복잡하고 다각화된 기업으로 성장하게 된다. 이 시기도 세 사람의 CEO에 의해 경영되는데, 찰스 윌슨(Charles E. Wilson, President, 1940~1942, 1944~1950), 랄프 코디너(Ralph J. Cordiner, President, 1950~1963, CEO, 1958~1963), 프레드 보치(Fredeick “Fred” Borch, CEO, 1963~1972) 등이 그 주인공들이다. 재미있는 것은 이 시기부터 공학이나 엔지니어링을 전공하지 않은 사람이 최고경영자가 되기 시작한다. 윌슨은 중학교를 중퇴하고 공장에 취직하여 현장에서 성장하였고, 코디너는 경제학을 전공한 후 영업 부문에서 업무 경험을 넓히기 시작했으며, 보치 역시 경제학을 전공하고 감사팀에서 경력을 쌓아 나갔다. 즉 엔지니어가 중심이 되었던 ‘개발의 시기’와 달리 사업가가 필요한 시기였다.


① 다양한 사업에의 진출


2차 세계대전 이후 복구 경제가 활성화되면서 시장의 크기는 엄청난 속도로 확장되었다. 다양한 분야에서 수요가 창출되어 GE와 같은 생산시설을 갖춘 기업들에게는 기회의 시기였다. 또 미국이 세계에서 가장 큰 시장이었지만 유럽의 경쟁업체들은 전쟁의 여파로 미국 기업들과 경쟁할 상황이 아니었기 때문에 이 시장을 미국 기업들이 독점하다시피 했다. GE는 전기기술을 기반으로 라디오, 이동용 TV, 스테레오를 비롯한 소형 가전제품을 새로이 생산했는데 모든 제품이 최고의 브랜드로 자리 잡았다. 또 전쟁 중 군용기 엔진을 제조하면서 축적한 역량으로 상업용 항공기엔진 사업에 뛰어드는 등 다양한 사업분야에 진출하였다.


특히 6대 CEO였던 보치는 회사의 내·외부에서 최고 인재들로 성장위원회(Growth Council)를 구성하여 경제성장률보다 성장률이 높은 분야에서 사업 기회를 찾게 했다. 이에 성장위원회는 제품 관련 4개 분야와 서비스 관련 5개 분야를 제안했다. 제품 관련 사업은 원자력 에너지, 컴퓨터, 상업용 제트엔진, 고분자 화학 등이고 서비스 사업은 엔터테인먼트, 지역사회 개발과 주택공급, 개인서비스 및 금융서비스, 의약품, 교육 등이다. 9개 사업 분야 중에서 4개의 분야만이 성공하여 항공기엔진, 플라스틱 제품, 금융서비스, 의료시스템 등의 사업으로 변화했고, 원자력 에너지는 서비스로 변화하여 명맥을 유지하였고, 나머지 분야는 모두 커다란 실패로 끝났다. 특히 컴퓨터 사업은 내부 투자와 함께 프랑스의 머신 불(Machine Bull)이라는 업체를 인수하면서까지 공을 들였으나 결국 IBM을 이기지 못한다는 판단 하에 손을 뗐다. 당시 신사업은 주로 내부 개발에 의해 진행되었는데 외부 업체를 인수하는 것보다 GE에서 만드는 것이 훨씬 낫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신사업을 추진하기 시작한 이후인 1960년대는 내실 없는 외형적 성장만 있었던 시기였다.


② 분권화 구조 확립


1950년대 이후 제품이 늘어나고 회사의 규모가 커지면서 기존의 중앙집중적인 경영구조가 가동되기 어려워졌다. 그래서 코디너는 ‘한 사람이 관리할 수 있을 만한 크기로’ 조직을 쪼개서 권한을 대폭 이양했다. 경영위원회에서 모든 의사결정을 하던 것을 각 기능 조직이나 사업부의 장이 자율적으로 결정하게 만들었다. 그러면서 피터 드러커의 조언에 따라 목표 관리(Management by objectives, MBO) 제도를 도입했다.


동시에 이러한 분권화된 경영방식을 GE의 전 조직원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크로톤빌 연수원을 세워서 교육을 진행했다. 스스로 <블루북>이라는 GE의 경영학 교과서를 만들고 직원들을 직접 가르쳤다. 외부와 단절된 채 13주 동안 실시되는 강도 높은 교육으로 참석자들의 스트레스가 심해서 교육생 중 한 명은 자살했다고 한다. 실제로 크로톤빌에서 행한 수업방식은 베트콩들이 미군포로를 세뇌시키기 위해 사용한 방법과 흡사했다고 한다. 앞서 살펴본 개발의 시기에도 인재를 중시하는 경향이 나타났지만 직원교육이 체계적으로 만들어진 때는 분권화 교육을 시키면서부터다.


그러나 분권화의 부작용이 나타나기도 했다. 조직의 층이 두터워져 관료주의가 발생하고 부문간 이기주의가 발생했다. 구성원들은 GE를 하나의 기업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각자 소속된 사업부에 더 많은 애착을 가지게 되었고, 사업부간 경쟁이 강화되면서 애사심이 사라지게 되는 등의 문제점도 있었다.


그럼에도 이 시기 GE는 상당한 명성을 얻었으며 많은 파업으로 홍역을 치렀던 다른 제조업체와는 달리 노동조합과 합리적인 협상을 통해 협력적인 관계를 지속해 나갔다.


③ 양적 성장 시도


전후 경제가 활성화되고 수요가 폭발하였던 상황이었기 때문에 GE 경영진들은 지나친 자신감에 차 있었다. 동시에 너무나 많은 신사업을 추진한 결과 9개의 신사업부문에 충분한 자금과 인적 자원을 충당하지 못하는 경우도 발생했다. 하지만 보치 경영 말기에 이러한 실수를 인정하고 사업을 평가하는 시스템을 구축하기 시작했다. 또 역량이 갖추어지지 않은 상태에서는 무분별하게 새로운 분야에 들어가지 않도록 했다. 이러한 움직임과 함께 GE는 ‘경영의 시기’로 자연스럽게 넘어가게 된다.


3. 경영의 시기


1970년대 오일 쇼크와 일본기업의 도전에 직면하여 미국 경제가 어려워졌을 때, GE의 경영도 변화한다. 특히 1960년대 후반 시도했던 신사업의 실패로 인해 ‘이윤 없는 성장’(The Era of Profitless Prosperity)의 시기를 경험한 이후 사업 포트폴리오 조정을 신중하게 진행한다. 이 시기는 와튼 스쿨(Wharton School)에서 경영학을 전공하고 재무 분야에서 성장한 렉 존스(Reginald “Reg” Jones, CEO, 1972~1980)를 필두로, 잭 웰치(John J. “Jack” Welch Jr., CEO, 1981~2001), 현임 CEO인 제프 이멜트(Jeffrey R. Immelt, 2001~현재)에 의해서 경영된다.


① 선택과 집중을 통한 사업 포트폴리오 견실화


무분별한 다각화와 신사업 진출 실패로 외형만 커진 GE는 존스 취임 이후 내실을 갖춘 성장을 이룩해 나간다. 존스 역시 신사업을 중요하게 생각하여 광물 회사인 유타 인터내셔널을 매입하는 등 성장에 지속 관심을 가졌다. 물론 이 회사의 인수는 결국 실패로 끝이 났지만 새로운 사업에 진출하는 일에 상당한 관심을 보였던 것이다.


하지만 사업 포트폴리오를 구축하는 것은 웰치 시대 이후에 활성화되었다. 웰치는 취임 초기 서비스, 기술, 핵심 사업 등 세 개의 분야에서 1등이나 2등을 하지 못하는 사업부는 정리한다고 선언하고 유타 인터내셔널을 비롯해서 가전제품, 반도체, 항공 등 많은 사업을 매각했다. 취임 후 15년 동안 400여 개의 사업을 매각하고 직원의 1/4인 11만 명 이상을 정리했다. 그리고 다양한 업체를 인수하여 금융서비스를 주력 사업으로 키웠다. 웰치 이후 GE의 성장은 내부 개발이 아니라 인수 합병에 의해 진행되었다. 이러한 사업 구조조정을 통해 웰치는 자신의 임기 중 250억 달러였던 매출을 1,300억 달러로 불렸고, 영업이익률을 6%에서 19%까지 끌어올렸다. 내실을 다지면서 덩치를 키운 것이다. 그래서 시가총액은 150억 달러에서 회장직을 사임한 2001년 10월 3,880억 달러로 25배가 늘어났다.


이처럼 장래 성장성이 떨어지는 사업은 매각하고 유망 사업을 사들인 것은 이멜트도 마찬가지다. 다만 그는 웰치처럼 M&A 중심의 성장전략을 유지하되 금융서비스 사업을 중심으로 GE를 이끄는 것이 아니라 헬스케어, 엔터테인먼트, 사회기반시설 등 기술이나 창조적 사업을 중심으로 성장해 나가겠다는 비전을 제시했다.


② 사업 평가와 효율적 관리를 위한 경영시스템 구축


보치는 자신의 임기 말기에 무분별한 신사업 진출로 인한 실패를 인정하고, 성공 가능성이 높은 사업을 고르기 위해 컨설팅 회사를 고용하여 사업 평가 시스템을 구축하였다. 이러한 움직임은 후임 CEO인 존스에게까지 이어졌다. 사실 재무통이었던 존스가 CEO가 된 것은 내실을 기하라는 뜻이 담겨 있었다. 존스 이후에는 사업 타당성을 세밀히 평가하여 확실한 분야에만 들어가도록 경영관리를 강화했다. 이 시기부터 현재 GE의 경영프로세스가 정립되기 시작했다(<그림 2> 참조).


이러한 경영프로세스 중에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이 인재 개발을 다루는 ‘세션 C’다. 이 세션은 주요 인재를 위한 개발과 평가 및 적합하지 않은 사람들을 가려내는 것이다. 상위 20%는 중점 관리하고, 중간의 70%는 육성하며, 하위 10%는 해고한다는 인적자원 포트폴리오(Vitality Curve)는 이미 존스 시대부터 만들어진 원칙이다. 인재를 중시하는 GE의 전통은 설립 초기부터 이어온 것이지만 이 시기부터는 핵심인재 중심 전략으로 인재 관리에서도 선택과 집중이 나타난다. 그래서 존스 시대 이후부터 GE에서 본격적으로 최고경영자 승계 시스템이 개발된다. 이 제도를 통해 웰치가 선택되었으며, 이멜트도 이러한 시스템에 의해서 CEO가 되었다.


한편 코디너는 매출이 5천만 달러가 넘으면 해당 부서를 나누어야 한다는 방침을 수립해서 지나치게 많은 부서가 생겨났다. 이러한 부문을 전략적 사업단위(Strategic Business Unit, SBU)로 대체하고 외부 시장에서 사업을 하는 분야만 존속시킨 결과 존스 시대에는 SBU가 125개에서 43개까지 줄어들었다. 또한 비슷한 기능들은 통폐합하고 역량 별로 사업군을 나누어 조직을 단순화했다(<그림 3> 참조).


웰치는 더 나아가 조직이 관료화되어 의사결정이 느려지고 아이디어가 사장되는 폐단을 없애기 위해 경영혁신 작업에 몰두했다. 워크아웃을 실시해 구성원의 아이디어를 경영에 즉각적으로 반영하였으며, 6시그마를 실행하여 경영활동의 효율성을 높였다. 또 그는 크로톤빌 연수원의 교육에 직접 참여하여 GE의 가장 중요한 현안을 과제로 제시하고 구성원들의 아이디어를 즉각 경영에 반영하였다. 이러한 관행은 이멜트 회장에 와서도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③ 질적 성장


경영의 시기에 들어서면서 GE는 과거의 경영방식이나 사업의 성공과 실패 경험에서 배운 것을 반영하여 체계적인 경영프로세스로 만들었다. 그러므로 현재 GE의 경영방식은 과거 경영의 진화된 형태이다. 사실 이 시기에 다양한 사업에 진출했지만 모두 GE가 잘 할 수 있는 영역이었다. 이러한 효과적인 경영방식에 의해 거대 기업 GE는 미래를 희생하지 않는 성과를 창출하여 이익을 동반한 성장(Profitable Growth)을 구가하고 있으며, 그 성장 속도도 놀랍도록 빠르다.

 


III. GE 경영의 DNA

 


위에서 GE의 성장과 경영의 발전 과정에 대해 살펴보았다. 130년을 지속 성장해 오면서 시대적 환경의 요구에 따라 경영도 변화되었다. 과거의 장점은 계승되고 취약점은 보완되면서 진화되고 있다는 것이 GE의 장점이다. 여기에서는 GE 전략의 실제적 특징보다는 100년 이상을 이어오면서 변하지 않았던, GE의 사업 활동과 경영에 영향을 미쳐온 행태적 특성을 살펴본다.


1. 일등 마인드에 기반한 파괴 경영


GE는 설립 초기부터 일등이었다. 19세기 말 전기산업이 태동할 때부터 시장의 선두를 놓치지 않고 오늘날까지 달려온 것이다. 이러한 일등 마인드가 GE 경영의 전반에 배어 있다. GE가 130년 넘게 영위하고 있는 산업에서 일등을 유지하다 보니, 그들의 경영에는 한계가 없다. 단순히 시장 환경을 받아들이지 않고 때로는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바꾸기도 한다. 전기산업 태동기에 시장이 빨리 커지지 않을 때는 고객들에게 다양한 지원을 통해 시장 환경을 바꾸기도 했다. 기존에 생각하지 못한 것을 시도한 것이다. 이처럼 일등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변화를 시도해야 한다.


이러한 경영은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1980년대 잭 웰치의 구조조정도 잘 나갈 때 바꾼 것이다. 사람들은 당시 GE가 커다란 어려움에 빠졌다고 이야기하지만, 이것은 웰치가 회사를 변화시키기 위해 과장한 말이다. 그는 자서전에서도 이야기하듯이 문제가 이미 발생한 후에는 기업을 회생시키는 데 지출되는 비용은 어마어마한 액수이며 더욱 고통스럽게 느껴진다고 했다. 그래서 위기가 찾아온 후에 어쩔 수 없이 변화하는 것이 아니라 잘나갈 때 바꾸는 파괴 경영을 하는 것이다.


파괴 경영은 GE의 CEO 승계과정에서 잘 나타난다. GE의 CEO들은 자신들과 전혀 성향이 다른 사람을 후계자로 지명하는 전통이 있다. 4대 CEO 윌슨은 경영진들이 듣기 싫어한다며 아무도 이야기하지 않던 조직구조에 대한 비판을 한 후에 당시 CEO였던 스워프의 눈에 들게 된다. 존스 역시 보치가 듣기 싫은 이야기를 했던 사람이다. 그런가 하면 존스 자신도 이야기하는 것처럼 후임자인 웰치는 자신과는 성향이 전혀 달랐다. 심지어 웰치는 취임 후에 존스가 인수한 후 끝까지 애착을 가지고 있던 유타 인터내셔널을 즉시 팔아 치웠다. 또 후계자 경쟁에서 웰치와 너무도 닮았던 나델리보다는 다른 리더십을 가지고 있던 이멜트가 선택되었다. 새로운 환경에 먼저 대비하기 위해서 미래를 이끌 사람으로 준비시키는 것이 GE의 CEO 승계의 핵심이다.


2. 미리 준비한 후에야 시작하는 사업 활동


GE의 사업을 보면 과거로부터의 전통이 있는 사업들이 대부분이다. GE는 역량이 갖추어지지 않은 단계에서 무조건 덤비지 않는다. 물론 보치 취임 초기 한꺼번에 너무 많은 신사업을 추진하여 된서리를 맞은 적이 있지만 이는 극히 예외적이다. 현재 가장 많은 매출과 이익을 창출하고 있는 금융서비스 사업도 20세기 초 제품 판매를 위해 소규모 지역 발전소에 재정지원을 해주거나 소비자들을 대상으로 제품 구매 비용을 빌려주고 할부로 대금을 받는 형식의 비즈니스에서 발전한 것이다. 제품 판매를 활성화시키기 위한 서비스로 시작한 것이 나중에 주력 사업이 되었다. 방송 등 엔터테인먼트 사업 역시 이미 1920년대 RCA를 설립하고 방송 사업에 진출한 경험이 밑바탕이 된 것이다. M&A에 의한 성장도 초기에는 GE가 잘 알고 있는 관련 분야의 사업을 인수하면서 M&A 관리 역량을 축적한 후에 비관련 분야의 사업도 인수하게 되었다.


3. 비용이 아닌 투자의 관점으로 보는 인재관


코핀은 엔지니어가 아니라 사업가였다. 사업가가 전기산업에 뛰어들어서 성공하려다 보니 최고의 엔지니어와 과학자를 채용할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설립 초기부터 GE는 인재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어느 기업보다 직원 교육에 많은 시간과 자원을 할애해 왔다. 이러한 전통이 남아서 현재 경영자 사관학교라는 말을 듣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인재 중시 풍토 역시 궁극적으로는 일등 마인드와 관련이 깊다. 후발자들은 창의적인 최고 인재가 많이 필요하지 않다. 남들이 만들어 놓은 것을 잘 이해하고 실행하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선구자들은 백지에 그림을 그리듯이 하나부터 열까지 새로이 만들어내야 한다. 이를 할 수 있는 것은 사람뿐이다. GE 역시 지난 한 세기 내내 산업에서 가장 앞선 회사였고, 선두를 유지하려고 했기 때문에 사람에 대한 투자를 할 수밖에 없었다. 사실 경쟁사의 인재 수준이 GE에 비해 낮았기 때문에 뛰어난 사람을 채용할래야 할 수도 없었다.


4. 고상한 경영철학보다는 실리주의적 사고 중시


GE는 대부분의 장수기업들이 가지고 있는 변하지 않는 경영이념이 없다. 아마도 이러한 특징 역시 초대 CEO인 코핀의 성향으로부터 나타난 것이다. 위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코핀은 타고난 장사꾼이자 사업가였다. 그는 인류에게 이바지하고자 하는 사업을 한 것이 아니었다. 신발사업을 하다가 전기산업으로 뛰어든 이유는 이 분야가 고성장을 할 것이라고 예상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실리주의는 코핀이 GE를 설립하는 과정에서 잘 나타난다. 코핀은 미국전기회사를 인수한 후, 포드, 에디슨, 웨스팅하우스 등이 그랬던 것처럼 자신의 이름이 아니라 설립자인 톰슨과 휴스톤의 이름을 따서 회사 명칭을 바꾸었다. 또 에디슨 GE와 주도적으로 합병한 후에도 자신의 회사 이름을 버리고 에디슨의 회사 이름을 따서 GE라고 불렀다. 실리주의적인 코핀에게는 회사 이름 같은 것은 중요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러한 전통으로 GE는 사업을 잘하고 많은 수익을 내는 것을 목표로 삼아 왔다. 그래서 CEO가 바뀔 때마다 핵심가치나 경영이념이 바뀐다(<표> 참조). 오직 공통적인 것은 기업을 성장시키고 높은 수익을 거두는 것이다. 물론 모든 기업들이 수익을 중시한다. 하지만 기업 규모가 커지고 역사가 깊어지면서 후세에 남을 고상한 경영이념을 만들려고 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 존경 받는 장수기업들을 보면서 그들처럼 고상해지고 싶은 모양이다. 이러한 시도를 하는 기업들에게 GE가 주는 메시지가 적지 않을 것이다.

 


IV. 시사점

 


GE의 역사를 고찰해보면 GE를 벤치마킹하는 데 있어 주의해야 할 점이 나타난다. 첫째, GE는 설립된 시점부터 일등이었던 회사고 지금도 일등이다. 100년 이상 산업을 주도하고 시장 환경을 자유롭게 창조하며 일등 전략을 구가해온 GE와 우리 기업의 유전자는 다르다. 우리가 일등을 똑같이 모방하는 순간, 일등은 저만큼 멀리 가 있을 것이다. 따라서 GE의 경영을 그대로 모방하기보다는 GE 경영의 핵심이 남들이 시도하지 않았던 것을 창조해내고 먼저 실행한다는 점을 명심하고 어떻게 GE와도 다른 경영을 할 수 있는지를 고민해야 한다. 물론 이를 위해서 전제되어야 할 것이 있다. 원래 일등이었던 회사와 일등을 따라 가다가 일등이 되려는 회사는 문화가 다르다. 그래서 한국기업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팔로워 문화를 버려야 한다. 일등 기업의 경영은 일등 마인드의 오랜 전통에 의해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둘째, 기업마다 성장 단계별로 그에 걸맞은 리더십이 있고 전략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그림 4> 참조). 기업이 설립된 초기에는 창업가형 리더를 중심으로 경쟁사보다 나은 제품을 출시하여 일사분란하게 움직여 나가야 한다. GE에게 있어 개발의 시기가 바로 이 단계에 해당된다. 그러다가 규모가 좀 더 커지면 사업을 확장하고 시장을 확대해 나가는데, 이 단계에는 빠른 의사결정으로 사업의 성장을 이끌면서도 경영을 체계화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다. 또 설립 단계에서 사람에 의해 진행되던 업무는 프로세스 중심으로 바뀌고 회사 내에 다양한 제도들이 생겨나기도 한다. GE에서도 코디너와 보치가 경영했던 시기가 바로 이 단계다. 그들 역시 기술을 기반으로 연관 산업에 진출하고, 성장을 위한 신사업을 모색하였으며 조직 구조를 분권화하고 경영을 체계화시켰다. 대부분의 회사가 이 시기가 지나면 상당한 기간의 성장 정체를 겪게 된다. 즉 성숙 단계에 들어서게 된다. 이 때 웰치 같은 혁신가형 리더가 나타나 기업에 다시금 활력을 불어넣는 작업을 진행해야 한다. 필요한 경우 수익성이 좋지 않은 사업은 매각한다. 이 시기가 경영의 기술이 가장 필요한 시기다. 이 시기를 잘 보내지 못하면 쇠퇴하게 되고, 이러한 성장 정체를 겪고 난 이후에 재도약을 할 수도 있다. GE의 경우 재도약에 들어간 경우이다. 이처럼 재도약기에는 다시 창업 단계의 마음가짐으로 돌아가서 신성장 엔진을 찾을 필요가 있다. 이멜트는 사업 포트폴리오를 효과적으로 가져가는 등 경영관리에 있어 뛰어난 모습을 보임과 동시에 상상력과 재발명을 강조하면서 창업가형 리더의 형태를 보이기도 한다. 이처럼 경영 환경과 성장 단계별로 GE는 전략과 리더십을 적절히 선택해서 성공했다.


따라서 GE를 벤치마킹하는 한국기업도 이러한 컨텍스트를 잘 읽고 배울 것은 가려서 배워야 한다. GE의 워크아웃과 6시그마 프로그램 역시 기업이 쇠퇴기에 들어갈 조짐을 보이자 먼저 손을 쓴 것이다. 우리를 알고 나서 남을 배워야 한다.


<참고 문헌>


Foster, Richard & Sarah Kaplan, “Creative Destruction”, Random House, 2001.4


Rothschild, William E., “The Secret to GE’s Success”, McGraw-Hill, 2007.1


Welch, Jack, “Jack: Straight from the Gut”, Warner Books, 2001.8

by 미니깡 | 2008/02/13 09:22 | 경제이슈 | 트랙백 | 덧글(0)
펀드 용어에 관하여.

펀드 용어는 처음 접하신 분 또는 해당 내용을 구체적으로 살펴보지 않으신 분들에게 어쩌면 가장 이해하기 힘든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로 인하여 모두가 편하게 이해할 수 있도록 이론적인 내용보다는 실생활에 맞도록 쉽게 풀어보았습니다.

 

 

1. Avg(평균수익률)과 Std(표준편차)의 지수의 높낮이에 따라 펀드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요?

 

Avg (평균수익률)

통상적으로 수익률이 틀린 것에 대한 기본적 이유는 주가의 변화에 대한 것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기본적으로 주식형펀드라는 것이 주식투자를 하기 때문에 주가의 변화에 따라 수익률이 변화한다라 말할 수 있겠지만, 간접투자방식의 펀드는 직접투자와는 상이합니다. 즉, 수익률이 반드시 주가에 따라 움직이지는 않습니다. 그러한 이유는 주식에 투자를 하지만 파생상품과 병행을 하기에 주식시장이 하락장이라하여 큰 손실을 입는다라 생각하는 것은 그릇된 생각입니다. 따라서, 해당 평균수익률은 기간별 펀드의 운용성과라 기억하시면 보다 효율적일 것입니다.

 

Std(표준편차)

특정 구간의 수익률이 해당 구간의 평균수익률과 비교해 떨어져 있는 정도를 측정한 값입니다. 즉, 표준편차가 크면 수익률 변동이 크고 작으면 상대적으로 수익률 변동이 작다는 것을 의미하므로, 수익률 상위 펀드라 할지라도 표준편차가 클 경우엔 위험도가 상대적으로 크고, 작을 경우엔 상대적으로 작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2.시장민감도(ß) 와 sharpe ratio의 뜻과 이들의 지수가 펀드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요?

 

 

시장민감도(ß)

 

베타값은 시장전체의 수익률이 해당 펀드의 포트폴리오에 얼마나 민감하게 반응하는가를 계량적으로 측정한 값입니다. 즉, 베타가 클수록 시장(ex. Kospi지수)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으로 1보다 클 경우 시장과 동일하게 움직이고 (공격적 성향), 1보다 작을 경우 시장의 흐름에 덜 민감하다 (방어적 성향)라 정의할 수 있습니다.

베타가 1에 높을 경우, 주식시장이 상승장일시 큰 수익을 보일 수 있지만, 하락장일 시 큰 손실을 볼 확률도 높아집니다.

 

sharpe ratio(샤프지수)

 

일정투자기간 동안에 있어 위험의 1단위당 무위험수익률을 초과 달성한 포트폴리오 수익률의 정도를 나타냅니다. 간단하게 샤프지수가 높을 수록 위험조정 후 성과가 좋은 것을 나타냅니다. 샤프지수와 함께 젠센의 알파값

(펀드매니저, 운용사의 능력을 나타내는 지수)과 Treynor Ratio(트레이너 지수)도 함께 고려하는 것이 보다 우수한 펀드를 고르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3. 총신탁 보수율의 정의는 무엇인가요?

 

펀드 운용과 관리에 소요되는 비용, 즉 신탁보수와 수수료를 포함하는 값입니다. 신탁보수는 펀드의 운용 및 관리에 대한 대가로 자산운용회사, 판매회사, 수탁회사, 일반사무수탁회사에 지급되는 비용을 펀드의 총자산에서 매일 차감하여 장부에 반영하며, 실제 보수인출은 3개울 단위로 지급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수수료는 판매사가 펀드 판매와 관련하여 수취하는 비용으로 선취판매수수료와 후취판매수수료가 있겠습니다. 투자기간이 장기간이라면 선취판매수수료를 내더라도 신탁보수가 낮은 펀드가 유리함으로 참고하시길 바라겠습니다.

 

 

4. BM초과 와 유형초과가 마이너스 인것은 왜 그렇게 된것이고 그 펀드상품에 투자시 어떤 단점이있는가요?

 

BM (Benchmark Index)

벤치마크의 의미는 투자전략과 조건을 함축적으로 나타내며 수익률, 위험, 성과요인, 위험조정성과지표 등 모든 평가항목의 기준이 되는 지표입니다. 벤치마크를 설정함으로써 펀드매니저에게는 주어진 목표가 발생하는 것이고 그것은 투자자와의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 도구가 되어 펀드를 고를 시 유형별 투자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BM의 유형은 시장지수 (Market Index), 섹터/style 지수 (Sector Index), 합성지수 (Synthesized Index), 정상포트폴리오 (Normal Portfolio), 맞춤포트폴리오 (Customized Portfolio) 등이 있습니다.

 

BM초과하는 수익률을 보여줬다라하면 펀드의 운용성과가 좋은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부진했다는 것을 단편적으로 알 수 있습니다. 유형평균이라는 것은 동일한 유형 즉, 성장형인 경우 성장형 펀드 내에서 재 등급을 부여하여 동일 성장형 펀드라 하더라도 비교가능하게 표시된 것입니다.

 

수익률을 보고 투자하는 것은 옳지 않은 방법입니다. 펀드에서는 꾸준한 1등도 없고, 꾸준한 꼴찌도 없기 때문입니다. 펀드를 고르실 때에는 답변 1, 2번에 대한 지수들을 보다 정확하게 보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5. 설정액 크기의 차이는 무엇인가요?

 

설정액은 펀드가 최초로 설정될 때에 신탁금을 수탁회사에 납입하는 것을 설정이라하며, 납입되는 금액을 설정액이라 합니다. 설정액은 펀드가 운용되면서 추가로 설정(해지)되는 경우엔 증감이 발생하는데, 펀드의 설정액이 일반적으로 높을 경우 설정액이 낮은 펀드보다는 많은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져 있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설정액이 높으면 지속적으로 투입되는 자금이 많기에 설정액이 작은 펀드보다는 보다 효율적으로 펀드운용을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겠습니다.

 

 

6. 수익률 차트에서 펀드가 BM보다 높으면 그 펀드가 운용이 잘되고 있다는 이야긴데 그렇다면 그 펀드에

    투자(?)를 한다면 그것이 다른것에 비해 비교적 안정적인 투자가 되는것인가요?

 

2005년부터 시작하여 2007년 하반기까지 운용한 펀드라면 대부분의 펀드가 BM초과한 수익률을 보였다라 말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 때의 주식시장은 지속적으로 상승장이였기에 대부분의 펀드가 가능했었지요. 허나, 주식시장은 어떻게 변할 지 모르는 법, 따라서 하락장에서 방어를 잘하는 펀드가 우수한 펀드라 말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씀드리자면, BM초과수익을 달성했다하더라도 안정적인 펀드다라 말하는 것은 무리가 있습니다.

 

 

7. 채권이 비중이 0에 가까울수록 안정적인 건가요?

 

안정적인 수익을 추구하시는 분들께서 주식+채권 또는 채권형펀드를 선호하시는 경향은 있습니다. 주식과 채권이 비중에 따라 안정적이라 말하는 것보다는 단기투자일 시엔 채권이 유리하고 장기투자일 시엔 주식이 유리합니다. 채권은 안정적이긴 하지만 만기가 길수록 위험도가 커지며, 주식은 불확실성을 가지고 있지만 장기적으로 투자하였을 시 채권보다 안정적인 형태를 띄고 있습니다.

 

 

8. 주식형>주식혼합형>채권혼합형>채권형>MMF>인덱스>하이힐드 순으로 칠때 주식형이 가장 위험한것가요?

    그리고 이중 안정적이며 수익률이 좋은것은 어느것인가요?

 

단기투자일 시엔 주식형펀드가 가장 위험하다라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만 투자이론에서의 위험은 수익을 낼 수 있다라는 말과 같습니다. 즉, 위험이 있기에 수익이 존재한다라 보시면 되겠습니다. 보다 안정적이라 답할 수 있는 것은 채권, MMF 가 있겠으나 장기투자일 시엔 주식형펀드가 가장 안정적인 투자처가 될 수 있습니다.

금융상품에 가입, 운용을 하기 전 자신의 투자기간이 반드시 성립되어야만 합리적인 투자라 말할 수 있는 것이지, 단순 수익을 바라고 운용기간이 단기간인 자금을 펀드에 투자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한 방법입니다.

 

 

9. MMF가 단기자금을 운용하는데 적합하다고 하는데 MMF로 장기투자가 단기투자보다 약한것인가요?

 

투자기간에 따른 올바른 금융상품을 선택하셔야겠지요. MMF 또한 투자상품으로 수익과 손실발생이 되는 상품입니다. 따라서, 무위험자산에 투자하신다면 은행의 적금 또는 국공채위주로 운용되는 CMA가 있겠지요.

장기투자를 본인께서 원하신다면야 MMF상품도 운용가능하겠지만, 그것은 합리적인 투자도구가 될 수 없겠습니다.

 

 

--------------------------------------------------------------------------------------------

 

개개인마다 펀드를 고를 때 보는 관점이 모두 틀립니다.

그것은 다시 말해서, 투자에는 정답이 없다는 것과 동일합니다.

 

투자에는 정답이 없기에 타인을 비방할 필요도 없습니다.

다만, 자신의 스타일을 무시한 체 투자고수라 자칭하는 타인을 따라하는 투자행위, 자신의 상황을 판단하지 못한 체 단순 수익이 좋다더라라는 말로 인하여 타인을 쫓는 투자방법, 단기간에 고수익을 바라는 투자 방법, 타인이 좋다고 권해주는 것을 아무런 비교없이 믿고 운용하여 손실이 난 후 타인을 원망하는 행위, 자신의 방법이 최고인 듯 타인에게 댓가를 바라는 투자권유행위 등 이와 같은 상황은 올바른 투자생활에 그릇된 방법들입니다.

 

투자에 있어 자신의 철학을 만들어 보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그러한 자신의 철학이 있다라한다면 목표기간 전 손실이 있다하더라도 믿음이 있기에 정신건강에도 이롭겠지요.

 

펀드를 고를 때는 평생 반려자인 신랑, 신부를 고를 때 처럼 신중하게.

펀드를 운용할 때에는 무언가 받으려고 하는 것이 아닌 자녀에게 모든 것을 주고 싶은 부모의 마음처럼,

운용한다면 목표기간 수립 후 분명 웃음과 행복을 누릴 수 있을 것 입니다.

 

모두에게 항상 행복이라는 단어 가득하시길 바라며.

 

 한국FPSB AFC (Accredited Fund Counselor)

by 미니깡 | 2008/02/12 19:34 | 경제이슈 | 트랙백 | 덧글(1)


< 이전페이지 다음페이지 >